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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STX와의 협상이 잇따라 무산됐다. 토토 꽁머니 홍보방 KT는 ‘KBO 가입비로 60억원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절 프리에이전트(FA) S급 선수 한 명 몸값이 60억원을 호가했는데 정작 야구단 가치가 그 수준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셈이다. 나머지 구단이 KT의 ‘헐값인수’를 허락할 리 없었다. KBO 이사회에서 KT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는 승인 거부됐다.

 

야구단 운영 시 발생할 연 200억~300억원 규모의 적자 예상 앞에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은 KBO 금고를 텅텅 비게 한 신상우-하일성 체제의 편이 아니었다. 자칫 돈은 돈대로 탕진하고 야구계를 7구단 체제로 퇴행시킬 ‘역적’이 될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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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국에 ‘그’가 나타났다. 이장석(52) 센테니얼 인베스트 대표. 당시 42세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투자회사 대표가 현대 유니콘스를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세상은 ‘도대체 이장석이 누구냐’며 술렁였다.

 

용산고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고, 비(非)미국계 1등 MBA인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에서 공부했다. 보잉사 컨설턴트(1989~1990년), 아시아비즈니스월드 CEO(1990~1995년), 메릴린치 M&A 부문 런던 어소시에이트(1995~1996년)를 거쳤다. 그러나 자금력은 미지수였다. 야구단을 사려는 동기조차 의심받았다. 부실기업을 맡은 ‘의문의 M&A 전문가’는 그렇게 불청객처럼 야구계로 발을 들였다.

 

투자회사는 투자가와 유망 기업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한다. 괜찮다고 판단하면 직접 투자회사가 베팅을 할 수도 있다. KT를 비롯한 대기업조차도 야구단 인수설이 나오면 시장은 주가 하락으로 곧장 반응했다. 99%가 “야구단은 돈 먹는 하마”라고 단정했지만 그는 달리 봤다. 여기야말로 인생을 걸만한 투자처라고 내다봤다. 당장 손에 쥔 것이 부족해도 망설이지 않고 돌진했다.

 

‘고난의 행군’을 건너서

"넌 틀림없이 좋은 타자가 될 거다. 내가 장담한다.” 2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만남. 선배는 이별을 예감한 것일까.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 룸메이트 신인 후배에게 덕담 한마디를 툭 건넸다. 그리고 “이거 다 가져라”면서 자신의 분신 같은 야구 도구들을 아낌없이 선물했다. 고가의 나무배트는 물론 2㎏이 넘는 연습용 방망이와 수십 켤레의 배팅장갑까지…. 선배는 글러브 하나 달랑 챙겨서 문을 나섰고, 후배는 떠나는 선배의 태산 같은 등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프로 첫 룸메이트와의 인연의 연결 고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1년 11월 일본 오키나와 LG 마무리 캠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배는 그해 LG 유니폼을 입고 0.355의 고타율로 프로 네 번째 타격왕에 오른 ‘타격의 신’ 양준혁(49·MBC 스포츠+ 해설위원)이고, 후배는 LG 우선지명을 받고 마무리 캠프에 참가한 고려대 4학년 유망주 신인타자 박용택(39)이다.

 

양준혁이 LG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다가 부랴부랴 귀국 길에 오른 것은 갑자기 프리에이전트(FA) 취득 기간이 10년에서 9년으로 단축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1993년 프로에 데뷔해 9시즌을 채운 양준혁은 FA 신청을 토토 꽁머니 홍보방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결국 4년 27억2000만원이라는 당시 최고 대우 속에 친정팀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2018년 6월 23일 잠실구장. 앳된 후배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베테랑이 돼 바람처럼 잠시 스쳐 만났던 선배의 전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이날 롯데전에 3번 타자로 나선 뒤 1회 말 첫 타석에서 펜스 상단을 때리는 2루타를 날렸다. 2318호 안타. 선배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 프로야구 역대 개인통산 최다안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4회 말 1사 1·2루에서 오른쪽 담장까지 총알처럼 굴러가는 2타점짜리 2루타를 터뜨렸다. 2319호 안타. 태산 같았던 선배를 뛰어넘어 새로운 역사를 빚어내는 순간이었다.

 

명창이 후계자를 한눈에 알아보듯, 후배는 과거 선배의 장담처럼 ‘틀림없이 좋은 타자’가 돼 있었다. 17년 전 자신의 도구를 ‘아낌없이’ 선물해 준 선배는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후배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용택은 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안타를 많이 친 타자로 우뚝 섰다. 그동안은 선배가 만들어 놓은 이정표만 보고 달렸지만 이제부터는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고독한 표범처럼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외롭게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양신’을 넘어선 ‘택신’ 박용택. 그는 어떻게 안타왕이 됐을까. 9가지 키워드를 통해 그 비결을 들여다봤다.

 

 01. 약속택 | 28년 전 아버지와의 약속

 

“우리 학교에서 달리기 가장 잘하는 학생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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